[맞수 기업 열전] ‘TTL’같이 성공하고 ‘쇼’처럼 도전하라



도전과 응전을 통해 10년간 통신업계 맞수로 커간 SK텔레콤과 KTF

▣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1999년 여고생 임은경의 끝없이 신비롭고 한없이 맑은 눈망울을 담은 ‘스무 살의 TTL’이 나온다. 한국통신프리텔 사람들은 절망한다.

2007년 얌전한 복장의 서단비가 흥에 겨워 온몸을 흔들며 “쇼를 하라”고 외쳐댄다. SK텔레콤 사람들은 좌절한다.

도전과 희망은 절망과 좌절에서 시작하는 법. SK텔레콤과 KTF. 그렇게 두 회사는 지난 10년 동안 ‘도전’과 ‘응전’을 통해 통신업계 맞수로 커가고 있다.

△ KTF의 ‘쇼’ 광고와 KTF 본사 건물 전경.


‘특혜 시비’로 이동통신 사업권 반납


SK텔레콤은 공기업을 인수해 출발했다. 물론 진통은 있었다.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은 92년 8월 말 어렵사리 따낸 제2 이동통신 사업권을 7일 만에 반납한다고 선언한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사돈이라는 이유로 특혜 시비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소탐하지 않는 통 큰 결단을 한 셈이다. 선경은 전략을 바꿔 한국이동통신 인수로 방향을 돌린다. 하지만 한국이동통신은 주식을 인수하는 방식이어서 막대한 인수자금이 들 것으로 예상됐다. 선경은 김영삼 정부 때인 94년 1월 공개입찰에서 주당 33만5천원이라는 상상을 뛰어넘는 금액을 써넣었다. 이동통신이 차세대 먹을거리 사업이 되리라는 전략적인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선경은 한국이동통신을 품에 안았다.

최태원 회장은 “당시 미주 경영기획실에서 근무했는데 미국에선 독점 통신기업인 AT&T가 분할되며 이동전화가 나오기 시작하던 때였다. ‘선경그룹이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분야여서 이동통신 사업에 나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아버지에게 전했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시대의 흐름을 포착한 것이다. 97년 한국이동통신은 SK텔레콤으로 이름을 바꾼다. 98년 1월 선경은 SK 브랜드를 남기며 45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KTF는 공기업 자회사에서 시작했다. 96년 한국통신(현 KT)이 개인휴대전화(PCS) 사업권을 따면서부터다. 한국통신은 자회사 한국통신프리텔을 만들어 이동통신 사업을 전담하게 했다. 시장 반응은 차가웠다. 과연 공기업 자회사가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민간 기업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을지에 대한 불신이었다. 하지만 새롭게 꾸려진 조직은 패기에 넘쳤다. ‘한번 해보자’는 열의와 의욕에 차 있었다. 농담처럼 ‘한때 한국통신의 자회사였던 한국이동통신을 되찾아오자’는 농담 같은 진담이 화두였다.

한국통신프리텔은 창립 당시 사장을 포함한 임원진이 모두 40대였다. 젊은 층이지만 해당 분야에서 이름을 날린 전문가였다. 마케팅과 유통 담당 임원은 공개모집을 통해 외부에서 영입됐다. 민간 기업의 경쟁 마인드와 체제를 도입하기 위해서였다.

곧바로 한국통신프리텔이 치고 나왔다. 97년 7월 고객의 초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가입보증금과 보증보험금을 받지 않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당시 휴대전화에 가입하려면 20만원의 가입보증금을 내야 했다. 때문에 휴대전화는 주로 사업가들의 전유물이었다. 곧바로 가입비, 기본료, 통화요금 등 서비스 요금의 가격 파괴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이상철 초대 KTF 사장(현 광운대 총장)은 “PCS 이전 이동전화가 일부 계층을 위한 서비스라고 한다면 PCS는 서민층을 파고 들어갔다”고 회상했다. 결국 한국통신프리텔은 98년 4월 100만 가입자를 확보하기에 이른다.

지켜보는 SK텔레콤은 착잡했다. 젊은 층한테서 ‘늙은 011’로 대접받기 일쑤였다. 브랜드 가치는 물론 조직 전반의 활력도 떨어졌다. 당시 표문수 부사장은 직접 서울 대학로와 신촌을 돌아다니면서 젊은 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조사했다. 젊은 층에선 SK텔레콤이 요금, 단말기 등 모든 면에서 열세였다. ‘20대에 어울리지 않는 제품’으로 드러난 셈이다.


SKT ‘스무 살 겨낭’ KTF ‘영상 통화로 판갈이’


SK텔레콤은 젊은 층의 가입 특성, 통화 패턴, 납부 방법 등을 분석해 젊은 층의 감성과 라이프 스타일에 맞춘 상품을 선보인다. 99년 7월 ‘스무 살의 011’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TTL’이 바로 그것이다. TTL은 서비스 개시 5개월 만에 가입자 100만 명을 확보했다.

△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주식회사 현판식 모습과 SKT ‘TTL’광고.

TTL요금제는 신세대의 통화 패턴에 맞게 지역할인, 지정번호, 커플요금제 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인기 몰이를 했다. 광고는 신비감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TTL의 성공은 99년 SK텔레콤이 이동전화 가입자 1천만 명 고지에 올라서게 하는 지렛대 구실을 했다.

97년 시작된 이동전화 5개사의 치열한 경쟁은 99년 하반기부터 인수·합병(M&A)이라는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된다. SK텔레콤은 99년 12월 포스코와 주식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신세기 이동통신을 전격 인수한다. 2000년에는 한국통신프리텔이 무리한 경쟁으로 투자 부담과 자금 조달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한솔PCS를 사들인다. 한국통신프리텔과 한국통신엠닷컴은 2001년 KTF로 조직을 통합하며 전열을 가다듬는다.

두 회사의 광고 경쟁도 쏠쏠했다. SK텔레콤은 ‘어디서든 잘 터진다’를 내세우며 KTF와 차별화해 나갔다. KTF는 기업 이미지를 ‘젊음’과 ‘도전’으로 정해 ‘KTF적인 생각’을 담아냈다.

SK텔레콤의 ‘산사’ 편 광고. 고승과 탤런트 한석규가 함께 대나무 숲을 거닐다 정적을 깨는 전화벨 소리가 울리자 한석규가 겸연쩍은 듯 휴대전화를 끄고 다시 스님을 따르는 장면, 이어 온화하게 퍼지는 스님의 미소와 함께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멘트로 마무리한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내세워 무분별한 휴대전화 문화에 일침을 찌르면서 수준 높은 휴대전화 문화를 제시했다.

KTF의 ‘넥타이와 청바지’ 편. 승용차를 탄 노신사 옆으로 청바지 차림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젊은이가 지나간다. 노신사는 못마땅한 기력이 역력하다. 장면이 바뀌며 한 사무실. 사장실 문을 여니, 아까 차에서 보았던 젊은이다. ‘넥타이는 청바지와 평등하다.’ 배우 안성기의 “KTF적인 생각이 대한민국을 움직입니다”라는 멘트가 흘러나온다. 기존의 사고를 가진 중후한 신사를 SK텔레콤으로, 창의적인 생각을 가진 젊은이를 KTF로 비유한 광고였다.

2007년 KTF가 반격을 한다. 작전명은 ‘쇼’였다. 준비는 치밀했다. 2세대(음성통화)에서 가입자 수 절반을 확보하고 있는 SK텔레콤을 따라잡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라 3세대(영상통화)로 ‘시장의 판을 바꾸자’는 전략이었다. SK텔레콤으로선 3세대 시장의 확산을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2세대 시장의 지배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전략을 썼다. 유석오 KTF 상무는 “쇼를 앞세워 3세대 시장을 주도하는 한편, SK텔레콤을 끌어들여 3세대 시장의 파이를 키운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KTF로선 쉽지 않는 결정이었다. 2006년 집중적인 준비를 할 당시는 3세대에 투자한다고 발표하면 곧바로 주가가 폭락하던 때였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3세대를 택했고, 결국 SK텔레콤도 ‘띵띠~띠리띠’라는 ‘T Live’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며 KTF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통신요금 담합’ 아닌 선의의 경쟁하길


KTF 가입자 수는 7월 말 현재 1418만여 명. 이 가운데 3세대 가입자는 676만여 명으로 절반에 육박하는 47.6%에 이른다. SK텔레콤의 3세대 가입자 수는 656만 명이다. 3세대 가입자 수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KTF을 SK텔레콤이 뒤쫓고 있는 모양새다. 그동안 ‘응전’했던 SK텔레콤이 ‘도전’하고, 그동안 ‘도전’했던 KTF가 ‘응전’하고 있다.

물론 두 회사의 통신요금 짬짜미(담합)는 자주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 6월 감사원은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막대한 폭리를 취하고 있다”며 ‘요금 개선’을 촉구했다.

하지만 맞수인 두 회사의 선의의 경쟁으로 가격과 콘텐츠 싸움이 불붙으면서 가입비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통신요금이 떨어졌고 콘텐츠와 기술은 올라갔다. 결국 이들 맞수가 있기에 소비자들은 이동통신 강국의 서비스를 체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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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경영인 리더십 비교



조직 지킨 ‘되고송’ vs 추진력 ‘쇼’

 

△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왼쪽)과 조영주 KTF 사장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왼쪽)과 조영주 KTF 사장은 모두 전문 경영인이다. 젊은 층과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하는 점도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김 사장은 수성형, 조 사장은 창업형의 리더십을 보인다는 점이다.

김 사장은 SK그룹이 혼란스러운 와중인 2004년 3월 취임했다.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태와 소버린의 경영권 위협으로 그룹이 어수선하던 때였다. 김 사장 취임을 앞두고 최태원·손길승 회장이 이사를 사퇴하고, 표문수 사장이 급작스럽게 퇴임했다. 계열사 독립 경영의 의지를 표출하기 위해 오너일가의 동반 퇴진이 불가피하다는 최 회장의 판단이었다.

김 사장은 가장 먼저 혼란스러웠던 조직을 추슬러야 했다. 김 사장은 국내 시장은 ‘수성’하고, 해외 시장은 ‘공성’하는 양동 작전을 벌였다. KTF의 끊임없는 도전에 응전해야 했고 미국과 중국, 베트남 등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서야 했다. ‘신기록 제조기’인 김 사장은 지난 2005년 매출 10조원을 이룬 데 이어 2006년 가입자 2천만 명 돌파 등 국내 이동통신 부문의 신기록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난 5월 서울 을지로 본사에서 직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김 사장은 “CEO라는 게 외로워질 때면, 여러분과 한 잔 하면 되고~♬”라며 ‘되고송’을 멋들어지게 불러 직원들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조영주 사장은 2005년 7월 사장 자리에 올랐다. 취임 일성은 “1등 KTF를 만들자”였다. 조 사장의 뚝심과 추진력은 ‘쇼’를 통해 고스란히 발휘되고 있다. 2006년 9월 임원회의에 3세대 브랜드가 5개 올라왔다. ‘W’ ‘쇼’ ‘Vyond’ ‘WHAT?’ ‘Wing’이 그것이다. 사실 실무진들은 이미 ‘W’로 결정한 것과 다름없었다. 소비자 호감도 조사 결과에서 1위로 나왔기 때문이다. 회의를 주재한 조 사장은 임원들에게 물었다. 시장조사 결과를 토대로 ‘W’가 안전할 것 같다는 의견이 절반을 넘었다.

하지만 조 사장은 “쇼가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쇼’라는 단어에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는 일부 지적이 나왔다. “쇼하고 있네” “쇼하네”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쇼는 젊은 층에 다가섰고, 대박을 터뜨렸다.

조 사장은 실제로 ‘쇼’에 강하다. 지난해 11월 재즈 공연 <윤희정&프렌즈> 무대에서 프랑스 가수 이브 몽탕의 <고엽>을 부르며 재즈 가수로 깜짝 데뷔한 적도 있다.




Posted by (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