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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1.03 박민규 - 카스테라

기억은 안나지만 꽤나 오래된 2학기 초.

도서관 복사집 앞에서 동기-친구라고 하기엔 어색하고 그렇다고 싫어하지는 않는-를 만났다.

소모임 자료를 준비하다가 읽어보라고 건내준 작은 단편.

이제야 꺼내 읽었네.

그 아이는 얼마 전 군대를 갔고, 나는 또다시 게으른 나를 한탄했지.

잘 읽었어. 라고 한마디 해주는 건데, 잘 다녀와라! 국방의 의무를 다 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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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시끄러운 냉장고. 강한 발언권을 갖고 있는 냉장고.

부패와의 투쟁에서 승리한 냉장고. 자랑스러운 냉장고.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소중한 것과 해악한 것이라는 원리를 지키면서

냉장고에 담아두었던 것들이 사라진 아침은.

냉장고의 승리일까. 아니면 세상의 승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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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히도 외롭던 남자가 냉장고를 만났고, 냉장고를 통해서 세상에 이야기 한다. 소중한 것이 대해서, 부패에 대해서. 그리고 새해. 반듯하게 놓여 있는 희고 깨끗한 접시. 그 위에 있는 카스테라. 따뜻하고 반듯하고 보드랍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카스테라.


초반에 나름 소중한 것을 냉장고에 담았다면 후반에 냉장고에 넣는 것들은 모두 해악한 것들이다. (부모님이 해악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으나 부모의 존재보다는 부에 대한 압박이 아닐까란다.) 마지막 날까지 가득가득 넣어 평화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했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눈앞에서 악을 없앤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용서. 작가는 용서라고 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냉장고가 없어도,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 이 남자. 카스테라를 먹으면서 세상에 대해 문을 열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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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하다. 너무 기발하다. 이름은 많이 들어봤었는데 이런 류의 소설을 쓰는 지는 생각도 못했다. 나는 뭘 기대했던 걸까. 그냥 그저그런 세상 사는 이야기? 연애 소설? 글쎄.


좋다. 짧막짧막. 그래. 맞아맞아. 기발한 그의 아이디어를 칭찬하면서. 네이밍 센스에 감탄하면서.





그러니까. 이 세상은 각자가 '냉장고'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


- 박민규 <카스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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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카스테라 단편집이 있길래. 카스테라 이외에 다른 단편들도 읽어보았다. 음. 글을 계속 읽다보니 어쩌면 카스테라가 따뜻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가 없다. 내공이 부족해.

Posted by (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