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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걸은 왜 알파우먼이 되지 못할까


 

매일경제|기사입력 2007-12-0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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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났거나, 잘 나가는 여성들을 가리키는 여성상위시대, 여풍(女風)이란 말은 더이상 새롭지 않다.

요즘은 이런 여성들을 ‘알파 걸(α-Girl)’이라고 한다.

알파걸은 댄 킨들러 하버드대 아동심리학 교수가  2006년 ‘새로운 여자의 탄생-알파걸’이라는 책에서 만들어낸 말. 어려서부터 부모의 관심과 전폭적인 지원 속에 학업, 운동,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남성보다 월등히 뛰어난 엘리트 여성으로 성장하고 있는 소녀들로 이전 세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여성집단의 출현이라는 점에서 알파라는 이름을 붙였다.

성차별이 줄어들면서 우리 사회에도 알파 걸들이 많아졌다. 딸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자신의 딸을 알파 걸로 키우려고 갖은 정성을 쏟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파 걸들 중 과연 몇 명이나 알파 우먼이 될 수 있을까. 나이가 올라갈수록 알파 우먼의 숫자는 현격히 줄어든다. 

알파 우먼이 소수라는 사실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알파 우먼이 되지 못하는 이유다.

공공연한 남녀차별은 사라졌지만, 일상은 여전히 남성위주의 관습과 관행이 지배한다. 능력을 바탕으로 공개적인 경쟁을 거치며 성장한 알파걸들은 드러나지 않는 남성중심 사회의 확고부동한 가치에 순응하기도, 거스르기도 힘이 부친다.

명문대를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취직해 10년간 직장 생활을 했던 조선희(39·가명)씨.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사업을 시작한지 몇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회사 시절을 생각하면 심란해진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연차가 올라가면서 점점 사람들과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주변이 온통 남자들 뿐인 부서에서 일했는데 제가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분고분하지 않다고 저를 알게 모르게 따돌리더라구요. 나중에는 후배들까지 은근히 저를 무시하는데 일에서 오는 만족보다 사람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더 커지더라구요.”

평생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입사했던 조씨는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장을 그만두었다. 현재 하는 일로 생활은 되지만 자신이 꿈꾸었던 미래의 모습과 전혀 다른 삶은 이따금 심한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역시 일류대를 나오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직장여성 이희수(38·가명)씨도 요즘 심각하게 전망을 고민한다. 일 하나만큼은 빠르고 똑 부러지게 해낸다고 자부하고 10여년 넘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지만 벌써 몇번째 인사 불이익을 당했기 때문이다. “윗사람들은 항상 조직을 위해 인사를 하다보면 개인이 불이익을 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보다 못한 남자 직원들이 승승장구 하는 것을 보면 참기 힘듭니다.” 하지만 마흔이 내일 모레인 대기업 차장급, 그것도 여성인 그에게 전직의 기회는 별로 없다. 눈 높이를 낮추어서 입사하거나 자영업을 해볼까 싶어도 스스로를 다운그레이드 하는 것 같아 당장이라도 회사를 때려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할 수 없이 그냥 다니고 있다. 이씨는 “시험을 보는 거라면 뭐든 자신 있어요. 하지만 사회생활은 아니더라구요. 안좋은 일을 자주 겪다 보니 이제는 자신감도 많이 줄어드는 것 같아요”라며 한숨을 쉰다.


■ 쏟아지는 알파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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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와 이씨 모두 요즘 기준으로 보면 알파 걸이다. 어려서부터 똑똑하다는 칭찬을 받았고 실제로도 공부를 잘해 좋은 학교를 나왔다. 부모도 금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딸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는 전통적 사고 방식을 이따금 경험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특별한 차별 받는 일은 겪어 보지 못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분명하게 밝히고, 아니라고 느낄 때 역시 똑 부러지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이런 알파 걸들은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서 넘쳐 난다. 

한때 여성 합격자라는 것만으로도 뉴스가 되었던 고시의 경우 여성의 비중은 해마다 늘고 있다. 올해 외무고시 합격자 31명 중 여성은 21명. 역대 최다다. 또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판사로 임용된 90명 중 64%인 57명이 여성이다. 지난달 30일 발표된 행정고시 2차 합격자 310명 가운데 여성 비율 역시 역대 최대인 48.3%(150명)으로 지난해 43.4%에 비해 5% 가까이 늘어났다. 행시 중에서도 핵심으로 꼽히는 일반행정직렬은 120명 가운데 여성이 78명으로 65%를 차지했다.

기업에서도 여성의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대 여성의 경우 전체인구 중 취업자를 나타내는 고용률이 59.7%로 20대 남성에 불과 1% 못미친다. 전연령대의 평균 고용률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22.5%나 높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요즘 입사 시험을 보면 여성 응시자들이 남성 응시자에 비해 학교성적이나 외국어 능력은 물론 태도나 자세 평균적으로 훨씬 뛰어나다. 현실적으로 성비를 감안해 남성들을 뽑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실제 국내 대기업 3곳 중 1곳은 대졸 신입사원을 뽑을 때 여성 합격자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막기 위해 남성 지원자를 일정 비율 이상 선발하는 ‘남성 쿼터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이런 현상은 세대가 내려갈수록 두드러진다. 일부 외국어고에서는 여자 신입생이 60%를 차지하고 아들 둔 학부모들이 여학생과 내신 경쟁을 피해 남고를 찾아 이사하는 일까지 벌어질 정도다. 또 학급은 물론 전교 회장들 중에도 여학생이 많다. 남학생 회장-여학생 부회장은 완전히 옛말이다. 2005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도 중3 여학생이 국어 사회 영어는 물론 전통적으로 여학생이 쳐진다는 수학 과학에서도 평균 성적이 남학생을 앞섰다. 초등학교 2학년 학부모인 김지현(38)씨는 “요즘은 어딜 가도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똑똑하고 적극적이라고 엄마들이 입을 모은다. 남학생 엄마들이 여학생들 때문에 남자들이 기가 죽는다고 고민할 지경”이라고 귀뜸한다.


■ 여전히 소수인 알파 우먼 ■

10대와 20대에서 알파 걸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과 달리 30대가 되면 알파라는 호칭을 붙일만한 여성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어 든다. 일례로 알파 걸들이 첫 직장으로 흔히 꼽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경우 여성 임원은 여전히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노동부가 상시 근로자 1000명 이상 기업과 정부투자기관, 정부산하기관 등 613개 사업장(2006년 말 기준)을 대상으로 실시한 ‘남녀 근로자 고용 현황’ 조사 결과 전체 임원 1만6001명 가운데 여성 임원은 613명으로 4.4%에 불과했다. 반면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사업장은 조사대상 사업장의 74.1%인 454개에 달했다. 이중 민간기업은 498개 중 349개(70.0%), 정부 투자기관은 14개 중 13개(92.9%), 정부 산하기관도 101개 중 92개(91.0%)에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었다. 또 과장급 이상 관리자 중 여성의 비율도 전체적으로 11.0%에 그쳤다.

또 다른 수치도 있다. 최근 취업포털 커리어가 국내 100대 기업 중 2001년 금융감독원에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83개 기업의 근로자수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여성 근로자수는 2001년 9만3820명에서 14만3254명으로 52.7%가 증가해 같은 기간 남성 근로자 증가율 4.5%를 훨씬 앞질렀다. 그러나 같은 기간 남녀 직원들의 평균 임금 격차는 더 벌어졌다. 2001년 대기업 남성 직원(평균급여 3894만원)들은 여성(2413만원)보다 1481만원을 더 많이 받았지만 지난해는 남성 5775만원, 여성 3500만원으로 그 차이가 2275만원에 달했다. 커리어 측은“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임원이나 관리직에 여성 비율이 낮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알파 걸은 아직까지는 그야말로 알파 ‘걸(Girl)’일 뿐, 알파 ‘우먼(Woman)’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 세대에 비해 이전 세대에서는 눈에 보이는 남녀차별의 장벽이 훨씬 높았기 때문에 성공한 여성의 숫자가 적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여성으로 하여금 일과 성공을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드는 구조는 아직도 굳건하게 존재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사회로 나오기까지 승승장구했던 알파 걸 대부분은 이런 현실에 부딪히게 되고 그중 소수만이 초인적인 노력과 일정 정도의 희생, 그리고 주변의 절대적인 도움을 받아야 비로소 알파 우먼이 될 수 있다. 스스로 노력해서 얻지 못할 것이 없다고 여겼던 알파 걸이기에 현실에 무릎 꿇거나 스스로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좌절감은 더 클 수 있다.


최근 승진인사에서 불이익을 보았다는 이영윤(40·가명)씨는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나의 실적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누가 말해 준다면 납득이라도 하겠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나를 추스려야 하는지 막막하다“고 괴로움을 토로했다. 최근 30대 여성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 알파 걸을 거부하는 가부장적 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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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알파 걸 대부분에게 능력이나 실적의 문제는 별로 없다. 자신이 맡은 일은 완벽하게 처리해내는 것이 알파 걸 대부분의 공통점이기 때문. 반면 알파 걸에게는 ‘주변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거나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하다’는 말들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기 일쑤다.

대기업 부장인 조상욱(50·가명)씨도 부서의 여직원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그는 “상사라도 곤란한 지시를 할 때가 있고, 또 관행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도 있다. 그럴 때 남자 직원들은 대개 알아서 하지만 여직원들은 정색을 하며 문제제기를 한다. 나도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하나마나 한 원론을 들먹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화가 난다. 그렇다고 남자직원들처럼 불러다 놓고 따끔하게 혼을 내기도 좀 그렇고… 어쩌다 싫은소리라도 하면 여직원들은 대개 얼굴에 금새 표가 난다”고 말한다. 평소 여직원들과 큰 문제는 없지만, 인사평가를 할 때 그의 이런 견해는 그대로 반영이 되게 마련이다. 

같은 전공의 팀원을 물색 중이라는 김영준(42·가명)씨도 마찬가지. 평소 남녀차별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함께 일할 사람으로 여성은 어쩐지 내키지 않는다고 털어 놓는다. “딱히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여자는 어딘지 불편해요. 말이 잘 통하는 경우가 없진 않지만 극히 적고 무언가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서요. 그렇다고 다 큰 사람들끼리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우습지 않습니까. 능력도 능력이지만, 나하고 같이 호흡이 맞는 사람이 더 중요한데 그러자면 남자가 아무래도 편하지요”라는 것.

이런 생각을 가진 남성들에게는 여성들이 술자리에서 보이는 태도도 불만이다. 술자리에 끼는 횟수 자체도 적은데다 어쩌다 부서화합을 위해 폭탄주라도 돌리려고 해도 “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당당하게 거부하는 것. 조 부장은 “어짜피 술을 먹고 흐트러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친해지기도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여자들은 좀처럼 그러지 않으려고 하니 사무실에서 쌓인 불만도 해소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지적에 대해 당사자인 알파 걸들은 수긍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인다. 기업체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유은정(38·가명)씨는 “회사는 어디까지나 2차 집단이지 1차 집단이 아니다. 상사를 엄한 아버지처럼 어려워만 해서는 이익을 내는 기업의 목적에 충실할 수 없다. 또 상사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보다 나은 의견을 도출하기 위한 과정인데 마치 자신에 대한 인격적 모독으로 해석하니 답답할 뿐”이라고 말한다.

유씨의 친구인 김영주(37·가명)씨도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사무실에서 할 수 없는 얘기를 술자리에서는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에 동의하기 힘들다. 술의 힘을 빌어 술자리에서는 엄청나게 가까운 사이인양 굴다가 다음날 아침 아무 결론도 없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수도 없이 경험했다. 못마시는 술을 몇번 마셔 봤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고 말한다.

양측의 이같은 입장 차이는 각자가 가진 인생관과 가치관의 차이이기도 하다. 전통적 가부장제에 기초한 남성들의 시각에서는 할 말 다하는 알파 걸이 불편할 수 밖에 없지만, 반대로 알파 걸의 입장에서는 합리성보다 권위에 의존하고 술자리를 비롯한 비공식적 채널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남성중심적 의사소통이 영 마뜩치 않다.

문제는 아직까지 가부장제가 사회의 근간으로 자리잡고 있고 가부장적 가치에 충실한 남성들이 보다 많은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편집장을 지낸 김신명숙씨는 이를 두고 자신의 책 ‘김신명숙의 선택’에서 “알파 걸들의 앞에는 알파 우먼으로 향하는 거침없는 직선코스가 아니라 가부장제라는 오래된 미로가 놓여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특히 공개적인 남녀차별은 어느 정도 사라졌지만, 관습적이고 관행적인 가부장제는 여전하다는데 문제의 심각함이 있다.이런 보이지 않는 남녀차별은 차별을 하는 남성들은 물론이고 차별을 당하는 여성들조차도 뚜렷하게 의식하기 힘들기 때문. 미국에서 1970년대부터 통용된 유리천정(Glass Ceiling·여성의 직장 내 승진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이제 국내에서도 본격화하는 셈이다. 


■ 알파 우먼의 발목을 잡는 육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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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여성의 직장 내 성공을 독려하는 표현으로 “여성이여 프로가 되라”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프로는 아름답다”광고 카피도 있었지만 이런 말들은 현실에서는 구두선에 가깝다.

특히 싱글 때 아무리 잘 나가던 알파 걸이라도 결혼과 출산, 육아를 선택하는 순간 프로로서의 삶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제약사 마케팅 담당차장인 김현수(38·가명)씨. 연년생 두아이의 엄마는 그는 둘째가 태어난 순간부터 친정과 살림을 합쳤다. 아이들과 살림은 전부 어머니가 맡아서 해주고 생활비를 드리는 식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프거나 어머니가 몸이 불편하면 언제든 회사에서 달려와야 하는 형편. 밀린 직장일을 벌충하려면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야 하고 주말에도 출근해야 할 경우도 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아이들은 부인에게 일임하고 일에만 매진하는 남자 동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남자와 여자는 같이 출발해도 결국은 여자가 결혼하는 순간 뒤쳐질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한다. 

시어머니와 한집 살림을 하고 있는 박사과정 조연수(42·가명)씨는 요즘 마지막 학기 휴학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한학기만 마치면 논문을 써야 하지만, 초등하교 5학년, 3학년이 아이들이 할머니 손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할머니가 아이들이 어릴 때 육아는 가능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교육은 커버가 안되더라구요. 학원을 고르고 데리고 다니는 것부터 학교생활을 도와주는 것까지 다 엄마가 해야하잖아요. 아이를 길러보면 엄마가 붙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얼마나 큰 티가 나는지 모릅니다.” 그나마 도와줄 사람이 있는 경우는 상황이 좋은 편. 한 명까지는 도우미 등 어떻게 해볼 수 있지만 둘째는 엄두도 내기 힘들다.

공부든 일이든 잘해야 스스로 용납이 되는 환경에서 성장한 알파 걸들은 자녀교육에서 소홀한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기 십상이다. 혹자는 “여성 스스로 수퍼 우먼 컴플렉스를 버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수퍼 우먼 즉 알파 우먼을 지향하며 성장한 알파 걸이 자신의 존재기반을 거스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지식과 정보에 밝은 알파 걸로서는 아이와 엄마의 유대관계 및 교육이 자식의 인생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스스로의 역할을 직장인으로 제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어릴 적 부모가 자신에게 해준 것을 생각하면 최소한 그 정도 수준으로는 자식에게 해주고 싶지만, 전업주부가 대부분이었고 사교육이 횡행하기 이전 자신의 어린 시절과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최근 둘째는 임신해 사직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박연희(35·가명)씨는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남자가 돈을 많이 벌고 여자는 집에서 살림을 해야 모두가 해피하게, 모든 것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구조 같아요. 엄마가 집밖으로 나가면 엄마도 아빠도 아이들도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 다 불편하고 피곤해지니 이래서 여자들이 어떻게 직장에 나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한다. 

그래서 요즘 직장 여성들은 아무리 잘 나가는 직급에 있다고 해도 육아 이야기만 나오면 “남편 돈 잘 버는 전업주부가 제일 부럽다”고 입을 모은다. 알파 걸 시절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발언이다. 그만큼 직장과 가정을 병행하기가 벅차다는 얘기다.


■ 알파 우먼 없이는 알파 걸도 없다 ■

그러니 사회 도처에서 알파 걸들이 활약하기 시작했다는 단순한 사실만 가지고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선뜻 결론을 내리긴 힘들다. 알파 우먼이 되지 못하는 알파 걸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 때 잘 나갔던 과거를 가진, 지금은 평범한 여성들을 양산하고 있다는 뜻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스스로의 성공을 자의반 타의반 포기하게 된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과 열정을 쏟을 곳은 결국 돈 불리기와 자녀교육 뿐이라며 부동산·주식 등 재테크 광풍과 지나친 사교육 열풍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알파 우먼이 되지 못하고 가정으로 돌아간 여성의 상당수가 내 딸만큼은 진정한 알파 걸로 키우겠다며 갖은 정성을 다하지만, 결국 그 딸 역시 가부장적 관습과 육아의 부담이 사회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한 알파 우먼이 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정부와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 인구가 줄고 국가 경쟁력이 저하된다며 걱정 어린 소리만 앞세운다. 능력과 자질, 성취욕을 두루 갖춘 여성 인력을 사장시켜버리는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방지할 근본적인 대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부모가 만들어준 가정과 성적이 곧 성공을 의미하는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서 성장한 알파 걸이 사회 속으로 걸어 나오는 순간 알파 우먼으로 자연스럽게 성장하지 못한다면 나는 계속 알파 걸로 살 수 있을 것인자, 과연 내 딸은 알파 걸로 키워야 하는 것인지. 누구라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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