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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27 [스크랩] 검은집과 마그리트
출처 블로그 >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원본 http://blog.naver.com/goldsunriver/90019060582

   요즘 새로 개봉한 영화 중에 가장 관심이 가는 영화는 "검은 집"... 이번 주말에 보고 싶었지만 오늘 밤에 떠나는 뮌헨 출장 때문에 다음 주말에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검은 집"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오랜만에 나온 한국 공포 스릴러기도 하고 원작인 일본 소설이 유명해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어느 영화 포털에서 본 이 영화의 대본 표지가 내가 좋아하는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을 변형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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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씨네서울 (www.cine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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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1954)

마그리트 René Magritte (1898-1967) 작
캔버스에 유채, 146 x113 cm
벨기에 왕립미술관, 브뤼셀

 

   "검은 집" 관련 기사들을 보니 실제로 영화미술팀이 이 그림에 영감을 받아서 검은 집을 디자인했다고 한다.

 

   '검은 집' 세트는 경기 광명시에 지었는데 신태라 감독이 미술팀에 보여 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빛의 제국’이 영감의 실마리가 됐다. 하늘은 맑은데 집과 그 주변은 깜깜한 밤으로 표현된 그림. 정점석 미술실장은 “원래 목욕탕이었던 집인데 넝쿨로 덮인 밖에서 안의 거실과 지하 목욕탕으로 들어갈수록 긴장감이 고조된다”고 말했다. – 동아일보 4월 3일자 기사 중

 

   "빛의 제국" 그림을 보면, 하얀 구름이 떠있는 위쪽의 푸른 하늘은 분명히 햇빛 가득한 낮의 하늘인데, 아래쪽에 있는 집과 그 숲은 그 햇빛을 전혀 받지 않는 밤의 상태에 있고 가로등과 실내등까지 켜져 있다. 이렇게 낮과 밤처럼 공존할 수 없거나 모순되는 요소들을 한 화면에서 결합시켜서 충격과 신비감을 주는 기법을 데페이즈망 Depaysement 이라고 한다고 한다.


   데페이즈망은 초현실주의 Surrealism 화가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한 기법이지만, 마그리트의 데페이즈망은 워낙 일상적인 사물이나 정경들로 이루어져서 그 충격 효과가 오히려 더 큰 것 같다. 전에 소개한 달리 Salvador Dali 나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그림에는, 기괴한 형태로 일그러진 사물이나 인물이 등장하고, 전체적으로 환상적이고 좀 시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마그리트의 그림에서는 사물들이 대개 얌전하게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고 그림 분위기가 덤덤하고 건조하다. 그런데 그 사물들이 엉뚱하게 놓여 있거나 서로 결합돼 있어서 충격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다. "빛의 제국" 그림에서도 하늘 부분과 집 부분을 따로따로 봤을 때는 그로테스크하거나 환상적인 데라고 하나도 없지만, 그 두 가지가 공존하면서 이 그림은 정말로 신비로워지는 것이다.

 

   두 세계의 묘한 경계에 서있는 것 같은 이 그림은 언제나 내게 강한 인상을 주지만 사실 무서운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 그런데 내 지인들 중에는 "빛의 제국" 그림이 정말 공포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생각해 보니 그런 점도 있다...  햇빛에도 불구하고 밤에 머물러 있는 저 집은 어둠의 원천일지도 모른다. 에드거 앨런 포의 “어셔 가의 몰락”에서 집주인 어셔의 음울한 성격에 대해 “그 마음으로부터 어둠이, 마치 선천적으로 절대적인 본질인 것처럼, 끊임없이 방출되어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모든 사물들로 퍼져나갔던 것이다”라고 하는 구절이 있는데, 이 집이야말로 그런 식으로 어둠이 절대적인 본질이며 주변을 물들이는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아마 “검은 집” 감독도 이런 점을 느껴서 이 그림을 바탕으로 검은 집의 이미지를 구상한 것 같다. "검은 집" 대본 표지에서는 마그리트의 집이 한층 검고 무시무시하게 표현돼 있어서 정말 어둠의 원천 같다.

 

   “검은 집” 제작팀에 마그리트가 끼친 영향은 포스터 중 하나에서도 드러난다. 이 섬뜩한 포스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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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Les Amants  (1928)
마그리트 René Magritte (1898-1967) 작
캔버스에 유채, 54.0 x 73.0 cm
오스트레일리아 국립 미술관, 캔버라

 

   이 그림 말고도 마그리트의 그림에는 저렇게 하얀 천을 얼굴에 덮어쓴 인물들이 여러 번 나온다. 시체의 얼굴 위에 덮는 것 같기도 하고, 교수형에 처하는 죄수의 얼굴에 뒤집어씌우는 것 같기도 한... 저 천을 덮어쓴 얼굴들을 보면. 죽음과 숨막히는 것 같은 느낌, 목이 졸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마그리트는 언제나처럼 자신의 그림에 대해 설명하길 거부했지만, 많은 평론가들은 그의 어머니의 죽음이 이 모티프를 탄생시켰을 것으로 추측한다. 마그리트의 어머니는 마그리트가 열세 살 때 강에 투신해서 자살했는데, 그녀의 시체가 건져 올려졌을 때 그녀의 하얀 잠옷이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그림도 저 숨막히는 하얀 천만 아니라면 평범했을 그림이다. 한 쌍의 남녀가 여행지에서 기념사진을 찍듯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에 저 하얀 천이 덮이면서 저 그림은 정말로 낯설고 섬뜩해지는 것이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위의 포스터 장면 같은 것이 영화에 정말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상징적인 의미로 만든 이미지인지... 또 영화 속의 검은 집이 정말 마그리트의 그림을 연상시키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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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