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싸이월드 최용일님 페이퍼 (http://paper.cyworld.nate.com/junos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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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호] 된장男女, 고추장男女,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2006.08.08 18:08
http://paper.cyworld.nate.com/junosir/1662946
 
 

된장녀는 최근 생겨난 인터넷 비속어다. 외모와 학벌 등을 무기로 남자에게 의존해 명품 선물을 받고 고급 레스토랑과 커피 전문점이나 들락거린다는 일부 몰지각한 여성을 ‘X인지 된장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하한 신조어이다.



인터넷에선 이 ‘된장녀’란 말이 여성비하라 하여 남녀차별 논쟁이 일더니 급기야 ‘고추장남’이라는 궁상떠는 남성을 비하하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각각의 상대어로 ‘된장남’과 ‘고추장녀’도 생겨나면서 바야흐로 인구에 회자되는 유행어가 되어 버렸다. 인터넷에서 ‘된-장-녀’를 검색해보면 한마디로 ‘비호감’ 절정에 달하는 요소를 고루 갖춘 여성형이다.



지난 4월 한 포털 사이트 여성 게시판에 익명의 남성 네티즌이 남기고 간 ‘된장녀’라는 말로 불붙기 시작한 논쟁이 불과 3개월여 만에 온라인을 점령했다. 처음엔 단지 “세련되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는 뉴요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는 듯하다 하여 뉴요커의 토종 번안 용어로 사용된 ‘된장女’가 확대재생산을 하면서 대학생들 사이에 ‘된장녀’ 논쟁이 뜨겁게 일기 시작했다.



‘된장녀’라는 단어는 어느 새 ‘된장녀의 하루’라는 시나리오를 갖게 된다. 한 네티즌이 묘사한 ‘된장녀의 하루’는 이렇다.



‘아침 7시30분 휴대폰 알람소리에 기상, 첫 수업이 10시인데도 불구하고 욕실로 향한다. 전지현 같은 멋진 머릿결을 위해 싸구려 샴푸는 거부한다… 화장한다고 아침식사를 못한 된장녀는 학교 앞 던킨 도너츠로 향한다. 다이어트를 위해 설탕이 가미되지 않은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설탕과 잼이 범벅된 도너츠를 먹는다.… 점심도 마찬가지. 된장녀들은 소중하므로 구내식당, 학생회관 따위에서 밥 먹는 일은 없다. 된장녀 셋이 달라붙으면 그 누구도 이겨낼 자 없다. 복학생 일주일 밥값이 된장녀 한 끼 식사에 날아가 버리는 순간이다….’


그 하루 일정표엔 빈정거림 이상의 분노가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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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서울지역 남녀 대학생 24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도, ‘된장녀 혹은 된장남이 실제로 캠퍼스에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37.4%가 ‘둘 다 많다’, 18%가 ‘여학생들은 대부분 된장녀라고 보면 된다’고 응답했다.



여학생들은 기가 막히다는 입장이다. 여학생들은 남학생들이 ‘퍼나르기’ ‘댓글’을 통해 된장녀 논쟁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허영으로 똘똘 뭉친 된장남들도 많더라. 왜 여자들만 공격하는가” 반문하는 이다혜(22)씨는 “남녀를 불문하고 개성대로 사는 게 대세인 21세기에 신(新)마초(남성우월주의자)가 등장하는 것 아닌가 두렵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3학년 지미란(22)씨는 “과도하게 외모에 집착하거나 부를 과시하는 친구들이 있긴 하지만 소수일 뿐인데, 요즘 여대생들의 단순한 트렌드를 싸잡아 된장녀로 희화시켜 매도하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된장녀에 대응해 탄생한 ‘고추장남’이 그 증거였다. 여성들의 집단적 분노는 곧바로 된장녀에 대응해 고추장남을 탄생시키게 된다. ‘300원을 아끼려고 시내버스 대신 마을버스를 타고, 구내식당 갈 돈도 아까워 학교 밖 편의점으로 향하는’ 등 된장녀와는 정반대로 묘사된 고추장남의 모습이다. 그러나 고추장남으로도 된장녀들의 분노는 사그라들 줄을 몰랐다. “궁핍하게 살련다”는 남성들의 자학으로까지 이어지는 고추장남의 모습으로는 망가진 된장녀의 체면을 복구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남녀 역차별 논쟁에까지 발전하면서 더 이상하게 꼬이는 면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장녀가 등장했고, 그 상대격으로서 고추장남이 등장했으나 고추장남이 된장녀에 비해 그렇게 비난받을 소지는 애초에 없어 보이자 결국 남성들 사이에도 된장남이 있지 않느냐는 주장도 나왔지만 여성들에게 불리한 국면만 계속되었다. 마치 개념의 특허권이라도 보장받는 것처럼 처음 등장한 된장녀의 파급효과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차에 고추장녀라는 신조어가 다시 등장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신조어 [고추장녀]는 앞서 남성들의 궁상을 꼬집고자 만들어낸 [고추장남]과는 차원이 다르게 진화된 상태였다. 그 고추장녀의 하루를 살짝 훔쳐보자.



“새벽 6시 맞춰놓은 알람시계를 졸린 눈으로 끈다. 한 숨 더 자고 싶지만, 도서관 자리를 맡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빨리빨리 움직여야 한다. 고시원에 딸린 공동 목욕탕에서 20분 내로 대강 머리감고 샤워하고 나온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생각 같아서는 화장 안하고 나가고 싶지만, 그렇게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힐끔힐끔 눈치를 주기 때문에 그런 게 불편해 그냥 대충이라도 찍어 바른다.



점심 저녁 대용으로 먹을 두유(슈퍼에서 50% 대량할인할 때 사놨다)와 에어컨 바람을 피할 얇은 점퍼를 가방에 넣고, 공무원 9급 수험서를 넣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은 걸어서 30분 거리. 버스를 타면 5분이면 가지만, 그 돈 모아서 나중에 학생식당에서 밥이나 한끼 사먹으련다.”



(중략)



“회사 어딜 가도 다 낙방이더라. 토익도 어중간하고, 학점도 어중간해서였을까?...나중엔 ‘내가 여자라서 떨어진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생각은 하면 안 되지만...) 나보다 토익도 낮고 성적도 낮고 말주변도 없는 남자 동기는 됐는데...어째서?‘ 사기업에 취직한 언니들은 하나같이 ‘기업에 취직할 생각말고, 공무원 시험이나 임용고시 준비하라’며 조언을 한다.…그나마 어릴 때 여성대우가 좋다는 공무원을 노리는 것이다. 그런 말에 공부를 시작한 지 어느덧 수개월. 그 수개월 동안 수험생 뒷바라지한 엄마아빠를 생각하면 이젠 포기할 수도 없다.



저녁 11시쯤 고시원 돌아왔다. 퀘퀘한 냄새와 어두운 방. 여는 때와 다른 게 없는데, 괜히 울컥 눈물이 치솟는 바람에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두유로 채운 배는 늘 이맘쯤 때면 고프다.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피곤에 쩔어 잠이 든다.”



이 글의 '고추장녀'란 취업이라는 단 한 가지 목표달성을 위해 문화생활은 고사하고 외모조차 신경 쓰지 않고 오직 공부에만 매진하는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의 여성을 말한다고 봐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글쓴이는 “여자 ,남자, 페미니스트, 군대 같은 걸로 싸우기 위해 이 글은 쓴 것은 아니다. 여성들을 늘 이런 식으로 비난의 대상으로 만들어 ‘갖고 노는’ 인터넷 문화가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과 세상엔 남자들이 보는 그런 골빈 여자보다 골찬 여자들이 더욱 많음을 알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말로 글을 맺었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도 남녀차별 의식인지 모르겠으나 이 글에서 보여주는 고추장녀는 고추장남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고추장남녀의 궁상맞은 공통성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이 글에 달린 “읽다 보면 불쌍해질 정도지만 문제는 실제로 남자들이 궁상맞고 화장도 안한 초라한 고추장녀에게 관심도 없다"는 댓글을 보고 있노라면 얼마 안되는 허영에 들뜬 된장녀의 문제나 그 된장녀를 쫒아 다니는 된장남이 다 문제임을 알 수 있다.



20대 남성들의 ‘군대 콤플렉스’가 된장녀 논쟁의 진원이라는 주장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한 복학생은 “(된장녀 논란은)우리가 군대에서 2년간 고생할 때 여학생들은 어학연수, 배낭여행 등 할 것 다하면서 캠퍼스 생활을 즐겼다는 것에 대한 억울함의 표출 같다”고 말했다. 군 가산점제 폐지 논란으로 시작된 남성 역차별 인식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설문조사에서도 ‘캠퍼스나 우리 사회에서 남성 역차별이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46.3%의 남학생들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군대 갔다 온 뒤 다시 학업에 열중하기가 힘든데 군 가산점도 못 받는 이런 현실이 싫다’ ‘여학생 휴게실은 단과대마다 설치돼 있는데 남학생 휴게실은 없다’ ‘레이디 퍼스트가 왜 당연한가’ 등등 다양하다. 이러다가는 남자만의 군복무 의무도, 여자들만의 대학도 역차별이고 최소한의 레이디 퍼스트 정신도 미덕이 아닌 각박한 사회가 될 것 같다. 소서노같은 여자만 살아남되 그러면서도 고추장녀는 되지 말아달라는 이율배반적인 주문이 동시에 이뤄지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명지대학교 여가경영학과 김정운 교수는 청년실업의 현실에서 전혀 행복하지 못한 20대 남성들의 불안과 강박의 결과라고 진단한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가상의 적을 찾기 마련이고, 그 대상이 발견되어 공감대를 이루기 시작하면 분노와 적개심을 집단적으로, 또 비논리적으로 표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성학자 민가영(홍익대 강사)씨는 “‘된장녀’와 ‘고추장남’들이 캠퍼스에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된장녀를 전체 여학생으로 일반화시켜 공격하는 데 문제가 있다. 된장녀 논쟁의 본질은 ‘젠더’(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성) 문제가 아닌 계급 문제임에도 군대에 대한 부담,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남학생들이 국방부나 노동부가 아닌, (만만한) 상대 이성을 향해 퍼붓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려대 심리학과 성영신 교수는 “된장녀 논쟁이 ‘멋 내는 여성은 머리가 나쁘다’는 구시대적 관념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 우려된다”면서, “이성에 대한 보다 성숙한 인식을 해야 할 20대의 남녀 학생들이 흑백논리로 상대 성별 집단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전파시키는 것은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된장녀나 고추장남 같은 촌철살인의 새로운 신조어들이 문제는 아니다. 거기에 시대정신을 담고 걸맞는 철학을 채색해낸다면 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된장녀-고추장남 문제를 놓고 보더라도 주로 여성학자들만이 논의에 참가한다. 그러니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라는 분석은 지극히 타당한 것이지만 과연 여성 측의 문제는 하나도 없는가 하는 생각에 미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편파성도 조금은 보인다.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그 안에 숨어 있는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이 오늘의 된장남녀, 고추장남녀를 읽는 현명한 독법이라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이다.



그런 일방적인 독법으로 인해 결국 [된장녀-고추장남/된장남]의 남녀간 성차별 논쟁에서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린 여성들은 여성 내부의 [된장녀-고추장녀 논쟁]에 천착해 들어가는 피해자의 자학증후군을 보이기 시작하였고, 허영심과 궁색함의 경연장화를 자초하기에 이른다. 어찌 보면 이러한 감성적 대응이 가벼운 말장난에서 출발한 된장녀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고추장남과 된장남, 된장아줌마를 넘어 고추장녀로까지 확산되는 등 각종 신조어와 새로운 트렌드를 재생산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상에서 된장녀는 ‘전통적인 관습 가운데 여성에게 이로운 점은 당연시 여기고 불리한 점은 불평등을 주장하는 극단적인 페미니즘을 신봉하는 있는 여성’을 지칭하는 성대결적 언어로 확대 해석되고 있다. 지금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신조어가 나오다 보면 어떤 해괴한 명칭이 나타날지 그야말로 미지수인 가운데 성대결과 성차별 논쟁을 넘어 감정적 이전투구로 진화할 전망이다.



급기야 남녀 네티즌 감정싸움으로 비화된 ‘된장녀’ 논란 속에서 일부 몰지각한 족속들은  ‘된장녀 키우기’란 플레시 게임까지 등장시켰다. 이 게임은 어떻게 하든 게임 속 여성이 된장녀가 되도록 설정돼 있다. ‘된장녀 키우기’ 게임은 ‘된장녀의 하루’와 내용이 같다. 정확한 명칭은 ‘된장녀 키우기 2.0-대한민국 상류층을 꿈꾸며’다. 게임을 시작하면 “집단주의와 명품선호주의가 판치는 대한민국에서 된장녀가 되지 않는 게 게임의 목표다. 행동지침을 정상여성으로 선택하면 된장순도가 증가하지 않는다”라는 설명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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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은 자칭 ‘꼴페처리위원회’라는 사이트에서 만들어졌다. ‘꼴페’는 꼴통 페미니스트를 줄인 말로 남성중심의 가치관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여성을 가리킨다. 이 사이트의 한 회원은 “된장녀 3.0 버전에 들어갈 새로운 아이디어를 남겨달라”며 추가적인 게임을 만들겠다고 했다. 사이트에는 한 여자대학교 주변을 그려넣은 ‘된장녀 탐지기’ 사진도 있다.



물론 온라인 상의 여성 비하 행태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부 여성의 행태를 소재로 악의적인 게임을 만들어 전체 여성을 비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류에 편승했다지만 재미도 없고 내용도 악의적이다. 게임을 해본 네티즌들은 “게임을 해보니 무조건 된장녀를 선택해야 한다. 억지로 된장녀를 만들어 즐기려는 마초들의 게임”이라고 지적했다.



그 어느 시대보다도 심각하게 다가오고 있는 경기불황 속에서 아버지 세대와 자신의 세대가 동시에 처한 노령화, 청장년실업 등 삼중고 속에서도 양극화된 사회에 길들여진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허영과 사치에 들떠 자신들 대부분이 속해 있을지도 모르는, 아니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없는 고추장남과 고추장녀를 궁상떠는 족속으로 묘사하고, 격에 맞지 않는 된장녀, 된장남을 속으로는 선호하면서도 비아냥거리는 무기력한 시대정신을 탓해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된장녀’, ‘된장남’,  심지어 ‘고추장녀’, ‘고추장남’의 모습은 현재의 한국사회의 평범한 일상을 반영한 삶의 방식들인지도 모른다.

Posted by (쑨) :